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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읽은책이야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하루키 소설을 읽다

by --한소리 2019.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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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 동양권에서 노벨문학상후보로 언급되는 작가.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일본인 작가. 꿈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자유롭게 이용하는 작가. 남녀관의 로맨스를 기묘한 방식으로 이야기에 적용하는 작가. 내가 가장 즐겨읽는 문학작가. 정도로 얘기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읽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름이 길어도 너무 길다)는 예전에 학교에 다닐때 빌린적이 있는 책이다. 학교에 다닐때도 꾸준히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학업에 치여서 피곤하다 보니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때도 빌렸다가 주말에 만난 여자친구가 보고 싶다해서 빌려주고나선 그냥 내가 반납했던 기억이 난다.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해보자.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내용을 두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자면 느닷없는 절교와 순례.로 정리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의 핵심 등장인물은 줄여보자면 다섯명. 아오(靑),아카,시로,구로, 그리고 쓰쿠루 다섯명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은 나고야에서 자란 중상류층 집안의 자제들이라는 것이고, 차이점이라면 아오,아카,시로,구로는 성에 색깔이 들어가 있는 반면 쓰쿠루는 색깔이 없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이것을 얘기한다. 이름에 색깔이 없을 뿐 아니라 쓰쿠루만이 스스로 몰개성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쓰쿠루를 포함해 아오,아카는 남자. 시로와 구로는 여자. 쓰쿠루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각자의 색깔이 뚜렷하고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 적어도 쓰쿠루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들속에서 이성적인 관계는 발전하지 않는다. 우정이 깨어질까 염려한 탓이다.  사이좋게 지내던 이들은 고등학교 입시를 마치고 쓰쿠루만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면서 쓰쿠루만 친구들로 부터 조금 멀어지게 된다. 그 전보다는 소원한 관계가 되지만 방학때마다 고향에 내려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쓰쿠루는 여전히 우정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 여름. 쓰쿠루는 영문도 모른채 친구 넷으로부터 절교하자는 일방적인 통지를 받게된다. 쓰쿠루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한동안은 죽음만을 생각한다. 절교의 상처를 겨우 가라앉힌채 삶을 살아가던 쓰쿠루. 여자친구 사라에게서 예전 친구들을 만나서 왜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했는지 그 이유를 묻고 오라는 부탁을 듣고, 다시금 용기를 내서 친구들을 만나는 순례를 시작하게 된다.

 

ㅡ소설과 영화의 차이점. 소설이 영화화 되었을 때 사람들이 실망하는 이유. 영화화 할수 있는 소설과 영화화 할 수 없는 소설.

이 책에서도 나오는 꿈이라는 수단. 하루키가 가장 즐겨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꿈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사람들을 이어지게도 끊어지게도 하며. 한 편으로는 현실을 꿈으로 만들기도. 꿈을 통해 현실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것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독자가 글을 읽는 동안 독자의 머릿속 상상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설득력이 없거나 석연치 않은 부분은 의심을 하면서 글에 대한 재미가 떨어질때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독자는 소설에서 말하지 않는 부분들을 스스로의 공상을 통해서 자기자신만의 설득력으로 채워버리게 된다. 비유를 들자면 이상한 꿈 같은 것이랄까. 이상한 꿈. 말이 안되는 꿈. 이런 꿈들을 꿀때 그 당시에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으나 깨어나고,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나서야 그것이 이상했다는 것을 알게 되듯. 소설을 읽는 중에는 소설 속의 비합리적인 요소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책을 읽게 된다. 소설 속의 비현실성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머릿속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니까. 검증의 치밀함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근데 만약에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면?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소설은 영화화 할수 있는 소설과 할 수 없는 소설로 나뉜다고도 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굳이 분류하자면 이 소설은 영화화하기 힘든 소설. 영화로 만들더라도 재미가 없을 소설이다. 하루키가 즐겨 이용하는 꿈이라는 주제를 영상을 통해 구현한다면 그것이 보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꿈이라는 주제는 하루키의 소설속에서만 설득력을 갖는다고 본다. 텍스트라는 수단에 가장 적합한 주제이다. 영화라는 미디어는 소설에 비해서 그 자체로 구체적인 성격을 띈다. 아무리 덜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해도 시각, 청각적인 부분에서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밖에 없고 이런 한계로 인해 어떤 부분에서는 설득력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글의 내용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을 잃어 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이 소설이 영화화 되었을 때 실망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아닌가 싶다. 자신이 생각하던 내용이랑 좀 달랐으니까 실망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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