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트는 언제나 조금 더 단순한데서 얻을 수 있다. 복잡한 현상의 너저분한 가지들을 쳐내고 나면 굵은 뼈대가 또렷하게 보인다. 디테일은 사라지지만 현상의 코어는 더 또렷해진다. 이 작가가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사람들의 행동양태, 생활양식을 읽어내기 위해 이용한 방법은 자신의 전공분야인 문화인류학. 비인간 영장류의 행동양태를 연구한 작가는 어퍼이트사이드 사람들이 행동하는 이유를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사람과 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에겐 이 책이 문화인류학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도구삼아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현상들을 이해하려한다. 특히나 다른 사람의 성격을 분석하는 기준은 대개는 나 자신이 되기 때문에 나와 다른 성격과 행동양식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이해하기가 쉽지않다. 특히나 사람에 대한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기들은 자신이 눈을 가리게 되면 세상이 어두워지며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세상도 나와 같이 어두워지리라 믿는것처럼.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이 나에게도 세상과 사람을 읽어내는 빛과 지도가 되어줄 수 있겠다는 일말의 기대가 생겼다.
주된 이야기는 뉴욕 다운타운에서 어퍼이스트사이드로 이사간 저자가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신인류'를 관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어가는 과정. 적응기라기 보다는 생존기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책의 줄거리는 다운타운에서 어퍼사이드이스트로 이사가는 것에서 시작해, 어퍼사이드이스트에서 어퍼사이드웨스트로 이사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아래는 파크애비뉴의 영장류에 담긴 일부 속물적 사례이다.
주거문화
어퍼사이드이스트의 주거형태는 크게 코옵과 곤도로 나뉘는데, 코옵은 주거위원회가 존재해서, 해당 아파트로 입주하려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자신이 가진 자산은 얼마이며, 자산의 종류는 무엇이 있는지를 입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운영위원회가 정한 입주자 요건에 부합하는 사람만이 아파트의 지분을 소유하게 된다. 운영위원회는 구매희망자에게 필요한것이면 무엇이라도 물어볼 수 있고, 구매신청을 거부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육아문화
어린이집을 들어갈때도 면접을 봐서 아이가 합격해야 들어갈 수 있다. 맙소사. 좋은 어린이집의 정원은 제한되어 있고, 들어가려는 아이들은 차고 넘친다. 따라서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욕구를 절제하고 좌절감을 컨트롤하며 자기 차례를 기다릴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학적인 면접을 통해 아이를 선별한다.
어린이집에 막상 들어가고 나면 어린이집에서의 주인공은 자녀가 아닌 엄마들로 바뀌게 됨. 어린이집의 엄마들은 아무하고나 관계나 친목을 다지지 않음.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우월한 남자와 결혼한 여성과의 릴레이션십을 위한 쟁탈전이 벌어짐.
한국의 상류층문화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티비를 통해, 지인을 통해 건너오는 얘기들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스카이캐슬을 떠올리게 한 내용도 많았다. 스카이캐슬의 이수임이라는 인물이 이 책과 작가에게서 비롯된 것일 거라는 강력한 정황들이 보인다. 작가라는 설정부터, 이혼녀, 평범한 동네에서 최상류층의 동네로 넘어오게 된다는 설정이라든지, 겹치는 부분이 꽤 있다.
나는 지방의 평범한 지역에서 자라서 자세한 사정은 속속들이 모르지만, 강남에서도 이와 비슷한 작태가 벌어지고 있을거라는 추측은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똑같다. 결혼을 할때는 남편의 경제력을 줄세우기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 아이들의 성적, 진학결과로 줄세우기 한다. 나는 나고, 자식은 자식일 뿐인데도 자식이 잘난 것이 나의 자랑이 된다. 남편과 자녀를 자신의 연장된 자아로서 받아들이고 과시하는 경향성. 명제는 전도되어 나의 행복을 위해 자식을 끊임없이 채찍질 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나쁜 얘기만 쓰게 되지만, 이야기의 끝에서는 결국 어퍼사이드이스트도 사람이 사는 곳. 그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라는 것. 인간성의 회복과 확인이라는 나름 훈훈한 결과로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는 느낀 점이 많은데 정리가 잘 안된다. 두 번, 세 번 읽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원문은 읽지 않았지만 번역이 매우매우 잘 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읽는데 걸리는 부분 없이 매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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